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먹지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안 먹어야 될 것을 먹었거나 잘 먹었더라도 이용을 잘 못하여 회향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직의 누구를 보더라도 먹지 말아야 될 것을 너무 많이 먹어 배설을 못하여 탈이 난 경우라 하겠다. 결국엔 배설이 아닌 한꺼번에 토해 놓아야 한다. 그이에겐 황금색의 가래떡 같은 것이 이제는 부러울 것이다.
이들처럼 자신의 변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신문을 전부 읽고도 실패를 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의 생활을 겸허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곳이다.
안내실에 있으면 물음의 반은 철스님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3할은 장경각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이고 2할은 해우소를 찾는 것이다. 이 중에 제일 급한 안내가 생사일대사인 해우소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일각이 여삼추 같을 텐데 고통을 참고 인사를 챙기는 것을 보면 해우소는 어지간히 중요한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근심을 풀고 나오는 약간은 허무함마저 풍기는 여유의 얼굴은 고통의 사바를 헤메이다 벗어날때의 미소에 비길수 있을 것이다.
\'해우소解牛所\' 소를 잡는 곳,
심우도의 마음을 밝혀 버리는 것일뿐 아니라 장자의 포정이 소를 잡는 것과 같이 칼이 살과 살, 힘줄과 힘줄을 지나고, 뼈와 살을 지나고 물렁뼈와 뼈를 바르면서도 칼은 수백 수천의 소를 잡아도 결코 닳지 않았다는 얘기처럼, 번뇌와 번뇌, 망상과 망상을 금강비를 휘둘러 본성을 드러나게 몇 생을 거치며 중생의 무명을 발라냈으면 한다. 배를 비워야 하는 곳, 배는 곧 마음이라고 했으니 그 속은 곧 마음을 비우는 곳이다. 그래서 해우소에 갔다오면 마음이 편하다.
이런 해우소에도 가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장마철이나 태풍의 영향으로 농도가 묽어 졌을 때는 대사로 인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력은 항상 지구를 중심으로 작용을 한다. 이름하여 만유인력의 법칙,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되돌아오는 인과의 굴레. 이름하여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곧, \'천척사륜직하수 일파자동만파수\' 표면장력을 깨뜨리고 도플러 효과에 카오스 현상까지 거쳐 어김없이 다가오는 피드백의 왕관 현상. 이 소름끼치는 인과의 체험을 어떻게 모면하느냐 하는 화두를 들고 들어서야 한다. 내가 싫다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미혹한 중생의 똥자루 몸이니 어쩔 수 있는가 생사대사를 해결하러 나만의 투쟁의 공간으로 입장한다.
같은 사바의 세계에도 성인과 범부가 같이 살고, 수행처에도 용과 뱀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총림에도 갓출가한 행자들에서 큰스님들까지 수행력도 가지가지, 법력도 가지가지 이므로 감로비를 맞아 양생하는 것처럼 화두를 드는 것도 다 각각일 수 밖에....
나홀로 다방에 형.
두 발을 딛고 있는 아래의 상황을 전혀 눈치를 못한 채 잔인한 윤회의 굴레로 당장 낭패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무사히형.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한다. 오늘은 무사히. 그렇지만 인과의 법칙은 에누리없음에 낭패를 볼 수밖에....
푸코의 추형.
갈릴레이의 진자의 운동과 탄젠트의 값을 이용, 입사각과 반사각을 이용 왕관 현상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여 일으키는 것. 이는 투포환처럼 물체의 이탈 시기를 정확히 잡아야 하며 성공했을 때에도 옆의 호실에 애꿏은 사람이 없나를 확인하여야 한다.
터보 엔진형(강력분사 방식).
단전에 기가 꽉 차있는 스님들의 방법이다. 두 곳의 차이가 나는 압력과 밀도는 평형을 이루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삼투압 현상이고 그것이 급작스레 이루어질 경우 폭발처럼 되기도 한다.
특히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급작스러운 이동이 좁은 공간을 통해 이루어 질 때, 내용물은 팽창을 하다 못해 분사된다. 다림질용 분무기의 효과다. 내용물의 분산으로 다량의 작은 원인이 많지만 작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도 많은 양의 처리는 무리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의 소모가 크므로 자주 쓰지는 못한다.
이이제이夷夷除夷 형
앞의 방법은 기의 소모에 있어서 효율이 낮기 때문에 발달한 구참 수좌형.
중력을 박차고 올라오는 왕관 현상을 패트리어트의 방공 체계로 격추를 시키는 것이다. 물론 엄청난 정확도와 강만수보다도 본능적인 시간차 공격을 필요로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미사일이 없으므로 빠른 철수가 긴요하다.
언론인형.
큰스님은 신문을 가져가 신문 위에
용변을 다 본 뒤에 슬쩍 밀고 나온다.
처음의 유형은 고통의 존재조차도 인식을 하지 못하는 범부의 모습이다. 여실한 인과의 법칙에 아무런 준비없이 방치해 놓는 중생의 모습으로 화내는 마음만 들끓는 우리 단상이다.
두 번째는 인생의 고통을 알지만 해결 방법을 모르는 단계이거나 절대자에게 의지하려는 신아를 믿는 외도의 행동이다. 사성제 중의 고성제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문제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을 요행수를 무지함으로 기다리는 이들.
다음은 자신의 고통 해결을 위해 남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외도의 유형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이익도 없는 홀로 자신을 구원하는 소승의 독각과 연각의 모습이다. 사성제와 십이연기의 진리는 알지만 회향이 되지 못하는 자리만의 소승의 수행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라한을 비유해 보았다.
그럼 보살님들은 어떠실까?
수도암 해우소를 좋아한다.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해우소를 만들어 왕겨를 비치해 두었던, 그리고 비닐비료 포대 너머로 보이던 연꽃 모양의 가야산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연과 전혀 다투지 않으며 자연의 양분으로 회향을 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