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의 네 가지 번역본 가운데 하나가 없어졌는데 송나라 본에는 있고, 거란본에는 없다.... 착오를 무릅쓰고 소경처럼 잘 못보았을지 모르는 말을 늘어놓으면서 후래에 이 문제를 밝혀줄 현철賢哲을 기다린다.
10. 불설신일경 중에서
...이 경은 첫머리에 있는 서문과 경문을 살펴보니 글쓴이의 잘못인 것 같다. ...마음대로 끊지 아니하고 후현에게 남긴다.
38. 대안반수일경 중에서
고려국 신조대장 교정별록을 보면 스님의 독자적인 견해가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독창성이 돋보이는 느낌인데요. 이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독자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교정별록에 보면 사문 수기등 교감 沙門守其等敎鑑 이란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나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함께 교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 십 명의 눈 밝은 스님들이 함께 기본 정신을 공유하면서 교감 작업을 했습니다.
이 때의 기본 정신이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최초의 대장경인 송나라 개보칙판 대장경과 거란의 대장경, 몽고군에 의해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의 내용을 엄밀하게 교정했던 것입니다.
또한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중국 황제만 사용할수 있었던 \'봉 칙奉 勅\'이란 단어를 과감하게 도입해서 \'고려국 대장도감 봉칙 조조\' 라고 새겼습니다. 아울러 송나라나 거란본 또는 초조대장경에 들어있지 않은 우리의 자랑스런 스님들의 저술도 함께 수록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의 자주성을 담으려한 표본이지요.
엄밀하게 교정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줄 압니다. 그 방대한 양을 교정할 수 있었던 당시 역량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참으로 그립습니다.
청자가 서민들에게까지 향유되던 고려라는 점은 그만큼 모든 것들이 익을 만큼 무르익었던 분위기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역시 다양하게 불교학이 무르익었던 시깁니다. 자녀가 출가하는 일을 기쁘게 여기던 시절이었고, 마주하는 이들의 눈빛 속에서 불심이 익어가던 시절이었으니 학문이 풍요로워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요.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불교학이 무르익지 않음을 탓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뜨겁게 공부하려는 분위기가 불교계 내부에서 부족한 것을 탓할 수는 있을 겁니다만 그것 역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상의 상관하는 역사 속에서 홀로 무르익는 법이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교정별록에는 \'.....후학들에게 남긴다\' \'현명한 이를 기다린다\'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눈 밝으신 스님께서 충분히 고쳐 놓고도 남을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손대지 않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고치려고 한다면야 누군들 못고치겠습니까? 불교학이 가장 무르익었던 당시라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친 것이 또한 \'전부 진리\' 라고 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불교학이 더 무르익은 경지에서 본다면 또 다른 명철한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내용을 더하고 빼는 것에도 신중을 기했습니다. 후학들이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고민할 부분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선 빼놓지 않고 자료들을 번역해 놓기도 했습니다. 오류조차도 후학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들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라는 의미지요. 흔하게 이루어지는 문화유산의 보수 문제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괜 시리 손대서 망가진 것들이 어디 하나둘입니까. 잘못된 것조차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입장이 다른 종파의 견해도 실어두셨더군요. 겨자맛 같은 극명함으로 교감 작업에 임하신 스님께서 그리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루 감싸 안는 것이 우리 불교의 진면목이 아니던가요? 언제 불교가 종파로 인해 갈라진 일이 있습니까? 적어도 고려 때는 그런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 우리가 고려를 이야기할 때 선종과 교종과의 갈등 같은 걸 지적하곤 합니다. 그 부분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겁니까?
본디 불교는 다툼을 원치 않고 갈등을 원치 않는 종교입니다.
절대 그것은 갈등이 아닙니다. 불교학풍이 무르익은 고려시대를 생각해 주십시오. 선종과 교종의 관계는 우월함을 놓고 겨룬 실력대결이라고 할까요, 서로 더 나아지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었던 것이지요.
대장경 조성의 총책임자라는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신 스님에 대한 자료가 너무 빈약합니다. 스님 같은 분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자료로 절 보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그 자료가 바로 제 모습의 전부입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역사도 현재는 바로 세우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개 속 같은 고려대장경의 역사를 되찾아내는 일 역시 우리가 해야할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란 세워서 되는 일이 아닐 겁니다. 역사 속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찾아내는 일이지요.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합니다. 왜 자료를 전하지 않아 이렇게 어렵게 만드냐구요. 잃어버린 고려의 신심, 고려의 정신을 바로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찾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 해인사와 고려대장경이 봉안된 장경각이 세계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세계인의 유산이 된 만큼 성숙된 자세로 보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겁니다. 칠백육십 년의 역사 동안 고려대장경이 빛바램 없이 여러분들의 시대로 보전되었듯이 더 오래 세월 흐트러짐 없이 전해질 수 있도록 21세기를 살아갈 여러분의 지혜를 모아보십시오.
어떻게 해야 잘 보존하고 보전하는지를 궁금히 여기는 분도 계실 겁니다. 보전의 지혜란, 옛 정신 그대로 옛 방식 그대로 옛 철학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흔히들 저희 현실을 두고 세기말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총체적 위기의 현실이라고 진단하기도 하지요. 왜 이렇게 어두운 진단만이 내려지고 있는 것일까요?
21세기를 눈앞에 둔 저희들에게 간곡하게 주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