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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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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오성 1996년 11월 177호
한반도 동쪽 허리에서 간첩 사건으로 분단 조국의 아픔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에도 해인사에서 봉건적 비민주적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사이에도 해인의 깃발은 천이백년 동안 전통을 계승하고 소중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이즈음 해인총림은 미래를 향해 현재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총체적 시각에서 진솔하게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 모색을 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현재 인류는 인류사의 대변혁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연기 세계의 합법칙성이 과거와는 달리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초공간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확고한 신념과 집념을 갖고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인간, 집단 그리고 국가나 민족은 미래사회의 중심 문명권으로 등장하지만 과거 지향적이거나 현재의 타성에 머물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주변 문명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해인총림은 역사적으로 누려왔던 기득권과는 달리 제 위상과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다. 한국불교의 상징인 해인총림이 과연 불교 미래를 향해 바람직한 승가상을 연구하고 그 모델을 제시하였는가. 대사회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제반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 인간 본질적인 논리와 역사적 현실적 증거에 의거해 이상적인 사상과 가치를 제시하였는가. 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혼의 분열\' 또는 앨빈 토 플러가 말하는 \'지성의 대 혼란\' 의 현대 사회의 힘에 이끌려 가고 있는 상황은 아닌가.
우리에게 밀려들어 오고 있는 변혁의 파도를 정선된 정보를 토대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불안정한 현대를 사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이해와 예측을 분명하게 하고만 있다면 현대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새로운 창조 도약의 길로 이끌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다. 해인 총림이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맞이 하는냐 하는 문제는 본 총림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흥망이 달려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몇 가지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 불교는 자기 사상과 조직을 전체 사회 앞에 개방할 수 있어야 한다. 성철스님 열반 뒤 해인사의 최근 사태는 현 한국불교의 봉건적이고 비민주적인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번의 사태 경험을 토대로 불교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되 자기 사상의 폐쇄성과 조직의 집단이기를 뛰어 넘어야 한다. 곧, 해인 총림을 모든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의 대중 조직 교단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므로서 해인의 조직을 사회 전체 구조와 유기적이고 역동적으로 연결 지으면서 전체 사회에 헌신적인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현대 사회에서는 연기중도의 합법칙성이 시공을 뛰어넘어 전개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이다. 정보기술의 혁명적 변화는 대중의 삶에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또한 정보기술은 발전과 변화 속도를 가속화시킴으로서 오늘날 지구촌을 일일생활권화 시키고 있으며, 과거 수 천년 또는 수백 년간의 변화를 몇 십 년으로 압축시키고 있다. 이처럼 연기 작용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뤄지고 있는 세계의 변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역사 속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산사라는 공간이 제한적 요소가 되지 않는 시대인 만큼 사상과 수행 기지를 마련하여 열려진 정보방을 통해 정책 입안가, 정보 관리자, 광범한 대중들에게 불교적 세계관 인간관 역사관을 전달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유럽에서 도태되어 가는 교회들의 실태를 교훈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강원, 율원, 선원을 체계적이고 일관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여 미래지향적인 수행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다. 수행 전법 깨달음 역사를 하나의 연기적 관계로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전통이라는 명분 아래 관념의 울타리에 안주하거나 현대화에 부응하려는 성급한 의욕이 앞서 불교적 진단과 대안이 없는 현실의 상황 논리에 매몰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교단의 흐름을 극복하고 교법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승가가 역사 속에서 새로나기 위한 조직적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승가 교육을 단순히 전통의 복고적 답습이나 지식, 기능 위주의 현대 교육에 매몰되는 것을 배격하고자 함이다.
끝으로 21세기는 정신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해인사를 그 중심축에 올곧게 세워 놓아야 한다. 팔만대장경판을 단순한 신앙의 대상과 문화재적 가치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부처님의 금구이게 끔하여 현대인들의 마음의 양식이 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역경과 전산화 작업이 관련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해인사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그에 걸맞는 주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삭막한 도시 생활과 경쟁 위주의 인간 관계로 피곤한 이들의 심신을 치유하는 쉼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해인사의 미래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어야 한다. 전통과 미래가 어우러져 인간의 이상적 가치가 실현되는 사상의 메카이며 수행도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