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상왕산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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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6년 11월 177호
세속에 물든 시간의 삶은 털어도 털어도 묻어나는 속진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벌써 한해도 다 저물어 가는 늦가을에 자연의 순리와는 달리 지나온 날들이 까닭없이 허허롭고 아쉽기 그지없다.
이 못난 마음자리를 씻어 주고 열어 준다는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의 표석은 여느 일주문보다도 나그네에게 새로운 길과 가슴을 열어 준다. 누가 피안이나 극락으로 가는 길목이 있다면 아마도 \'세심동 소나무 숲과 돌계단 길\' 같을 것이라는 기억이 솔바람에 새삼스럽다.
휘적휘적 길을 오르다 말고 자리를 펴고 먹을 가는 시간 속에서 세월의 앙금은 사라지고 길이 보인다.
내가 오르고 싶은 그리워해 온 초월의 시공간이다.
공들인 돌계단이 인공의 체취보다는 자연에 더 가깝고, 용트림하듯이 휘돌아 가는 길 모퉁이에서 치켜보는 소나무의 형상이 같은 길의 이미지로 쏟아진다.
솔 숲의 도열이 마감하는 순간, 대 숲의 일렁임 속에 홀연히 드러나는 연못, 몇 해 전 이 연못에서 수련을 그리는 내 뒷모습을 담아 준 사진이 내방에 걸려 있어 한시도 개심사를 잊은 적이 없다.
연못 위로 난 나무다리를 건너 또 다시 소담한 돌계단을 오르면 \'상왕산 개심사象王山開心寺\' 라는 해강 김규진의 예서가 안양루에 걸려 있다. 잠시 연못을 내려다보다가 오른쪽으로 난 자그마한 해탈문을 들어서면 이내 대웅전 뜨락이 밝아 온다. 주심포와 다포의 절충식이라는 대웅전 아래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대들보가 명물인 심검당, 무량수각이 상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백제 말기 654년에 혜감이 창건하여 개원사라고 했는데, 처능이 1350년에 중창하면서 개심사라 하였다고 한다.
상왕산이 코끼리 형상이라 목이 마르지 않게 연못을 조성하였다는 설도 들리지만, 딴에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적 요소가 짙게 풍겨 오는 느낌이 이 곳의 지형이다.
산기슭의 산산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명부전과 경허당이 가람의 형상을 더해 주는데, 명부전의 시왕상이 이채롭고 경허당뜨락을 두른 기와 담장이 소담스럽다.
애초 산신각에서 바라보는 가람의 전경을 기대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이튿날은 맞은편 남산에 올라 바라보니 한눈에 산자락의 형세와 가람의 알터가 조망되었다.
소나무가 주종인 상왕산이지만 가람 주변엔 활엽수가 갈잎을 드러내며 늦가을의 정취를 전해준다. 주산을 끼고 좌청룡 우백호의 용맥이 뚜렷한 골짜기 흘러내린 곳에 세심동 돌계단과 솔숲이 길을 내어 가람을 산 중턱까지 올려 놓았다. 내청룡 산허리에 흙이 드러난 곳은 추사 김정희 집안의 묘소임을 알겠는데 오른쪽 산 능선자락 바로 아래의 궁전 같은 불사는 어찌된 것인지.
이 불사로 인하여 크게 시각적인 혼선이 와서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종무소가 따로 없는 절에 내려와 물어도 답해주는 스님이 없다.
한나절 동안 잎을 열고 해맑던 수련이 움츠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어쩐지 내 마음마저 닫혀지는 것 같다.
돌계단을 내려 서기 전 자동차를 위해 따로 난 옆길을 살펴보며 문명과 자연의 상관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변함없는, 변해서는 안 될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솔 숲 돌계단을 내려서며 나그네는 마음 한 자락을 개심사에 흘리고 떠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