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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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11월 177호
만추의 가을날 오후는 바람의 칼칼함 때문인지 동네는 늘 텅 비어 있었다. 신명나게 놀던 아이들의 함성소리도 논밭을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진 길을 외로운 가을 햇살과 마른 가지에 걸린 붉은 감만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두리번거리지만 또래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텅빈 거리를 훑다가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동네에서 가장 키가 큰 감나무였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얼굴로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감나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감을 보면 먹고 싶기보다는 감의 어여쁨에 더욱 더 매료되곤 하는 것은. 동네 아이들이 없어 놀거리가 없는 날은 감이 더욱 예쁘게 투영되고 순박한 욕구는 영락없이 내 발길을 감나무를 향해 부추겼다.
감나무는 가지가 잘 부러져 떨어지기 십상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감을 따서 손에 쥐고 싶은 그 욕구를 어쩌랴.
확실히 내게는 어려서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여 러번에 걸친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을 동무없는 날의 내 유일한 놀이로 삼았으니 말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나는 딱 한번 감나무에서 떨어지고야 말았다. 아, 그 순간의 아뜩함이란.
그 뒤로는 다시는 감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중이 되어 도반 스님들이 감을 딸 때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면 볼 뿐 좀처럼 감나무에 오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아픔의 통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의 아뜩함이 여전히 삼삼하게 눈에 잡히는 것을 어쩌랴.
가을이 깊어 가고 도반 스님들이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딸 때면 내 아픈 허리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흙 속에서 거칠게 다져진 손이 그토록 섬세하고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밤새 잠 못이루고 물을 데워서 수건을 적시어 내 등에 대고 꼬옥 눌러 주던 그 손길. 내가 허리를 다치고 몇 날을 어머니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마디의 퉁박도 내게 하지 않았다.
그저 다친 내 새끼가 안 됐다는 듯 조금만 신음할라치면 \"괜찮다,괜찮어\" 하던 어머니. 낙상을 해 아팠던 그 날들이 내게는 오히려 행복이었다. 어머니가 늘 곁에 있었고 누구도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아픔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랬다. 이 썩 괜찮은 \'왕\' 으로서의 대접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나를 떨군 감나무가 다 고맙게 생각될 정도였으니.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감나무를 볼 때면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픔까지 행복으로 변화시키는 어머니의 놀라운 사랑의 위력을 감나무를 통해서 보는 것이다. 감잎이 도량을 쓸고 지나는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감잎이 도량을 쓸 듯 철저하게 무장한 내 사문의 마음까지 쓸고 지나기 때문이다. 감잎이 쓸고 간 내 마음의 자리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만난다.
수심도 사랑도 한아름 안고 살다가 떠나신 어머니. 그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믐달을 안고 누운 도량을 거닐며, 시린 하늘 속 춥지나 않으신지 어머니의 안부를 조용히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