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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던 가을을 다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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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정자 1996년 11월 177호
그 부고를 들은 것은 아침이었다.
그 날 난 줄곧 서늘하다가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은 깃털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내 머리를 막고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라도 친 것처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까, 거를까조차 정하지 못한 채 오전10시가 되었고,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벨소리는 들었지만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치 못한 나는 망연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었다. 메시지를 남기면 전화하겠다는, 내 귀에도 정없이 건조하게 들려 다시 녹음할까 생각중이던 내 음성이 끝났다.R이었다.
\"나야, 있으면 전화좀 받아줄래?\"
그의 목소리는 조금 불안정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H말인데.....\"
무심하게, 정말이지 그렇게 물을 아무 전조도 징조도 없었는데, 나는 \"죽었어?\" 하고 물었다. 그렇게 묻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하며,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한 대답이 들려왔다.
\"....응....\"
내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나는 수화기를 들고 침대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나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거실에서 남편과 일상을 이야기하던 H는 남편이 텔레비전 리모콘을 찾는 사이에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렸다. 평온한 밤이었고, 북서계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아무 문제도 이유도 계기도 설명도 없었다.
얼마 전 동숭동에서 H를 만났을 때 그는 그에게 육박해 들어오는 모든 것에 사무쳐 했다. \"가을 타는 거야?\" 나는 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 그걸 영광이 지나간 자리에 버려져 있을 뿐인 화환의 의미가 아니라, 오십이 넘은 여자에게도 여전한 분량으로 남겨진 감수성이라고 받아들였고, 그리고 기뻤다. 그러나 난 가을을 타는 동안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던 사춘기 때의 소요를 지나쳐, 스스로를 죽여버리도록 만들어버린, 치명적인 오십세의 가을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공연중 이었다. 누가 죽건 말건 하늘이 무너지건 꺼지건 나는 극장에 가야 했다. 먼저 공연 전에 영안실에 들러야 했으므로 난 검은색 옷을 찾아 옷장을 열었다. 부자는 슬픔도 상복으로 과시한다던 보들레르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부자일까? 목구멍으로 쓸쓸함이 꾸역꾸역 밀려 올라왔다. 그 쓸쓸함이 폭풍으로 변하기 전에 급하게 집어삼키고 검은 치마를 꺼내는데 문득 한기가 느껴졌다. 창문을 닫다가, 시든 풀밭 위의 겨울 서리처럼 떨어져 내린 낙엽들을 보았다. 언제부터 떨어져 있었지? 나는 의문이 식은 땀처럼 변하는 것 느끼고 있었다. 그 때 하나의 어휘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가을\'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깊게 당도해 버린, 상처를 헤집어 햇빛에 드러내는 가을이었다.
그 전까지 내게 가을은 단풍과 살갗에 돋는 소름과, 추석 때의 한산한 거리와, 몸을 움츠린 채 팔장을 끼고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내 친구의 생일이 있는 달이 시월이란 자각과 스무 장의 실크 머플러와, 전깃줄에 모여 앉은 새들과, 최양숙의 \'가을편지\' 와, 방송국의 가을개편과, 진부한 커피향기와, 음악회 티켓을 사는 사람들이 매표소 안으로 내미는 손으로만 다가왔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부고를 통해 가을을 받아들였을 때 가을은 더 이상 감미가 깃든 쓸쓸함과, 커피 향기로 헤아리는 감상적 행복과 은성함으로 존재하기를 그쳤다.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 가을은 나도 골백 번 타고 있었고, 나도 그처럼 내 자신도,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 거라는 예감이 신 침처럼 가득가득 고여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누군가 내게 책 열 권을 선물해 주었다. 그건 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폭풍의 언덕」,「죄와벌」,「신곡」「전쟁과 평화」, 「개선문」같은 의고적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고전들이었다. 책을 선물해 준 이는 난독증이 있는 내게 일 주일에 한 권씩 읽으라는, 힘겨운 숙제를 조건으로 그 책을 선물해 주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 책들은 세로 읽기로 돼 있는 데다 활자도 놀리는 것처럼 작아,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무리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 알약처럼 고역스러웠다. 그렇게 날마다 아침 페이지를 넘기는데 전 존재를 바친 다음 나는 극장에 나갔다. 하지만 연극 속에서 나는 딸의 자살을 지켜보아야 하는 무력한 어머니가 돼 한 시간 반 동안 자신을 쥐어짜고 있었다. 나는 연극 속 내 처지만으로도 그 가을을 이겨내기 벅차고도 벅찼다. 그러나 나는 읽히지 않는 책갈피 속으로 나를 구겨 넣으면서 공허로부터 보호하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건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개선문」을 읽는 동안 가을이 지나갔고, 연극도 끝났다. 그리고 나는 고통이 가만히 내 가슴에 용납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뒤에도 가을은 여전히 쇠잔한 낙일落日의 흔적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나는「폭풍의 언덕」을 찾아 읽고 있었다. 다섯 번째 책이었다. 라디오에서 토요일이면 시외도로가 꽉 막힌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단풍과 청면한 공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단풍? 청견한 공기? 내가 교외로 나가본 지 얼마나 된 걸까? 단풍이 지구에 있다는 걸 안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게 가을은 없었다. 가을에 나는 공연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다른 계절과 똑같은 분량만큼 불행했고, 다른 계절과 똑같은 분량으로 행복했다.
가을은 수없이 내게 다가왔다 나를 지나쳐 사라져가는 날들의 집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잃었던 가을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모두 떠나버리고 나만 방치돼 있는 것 같은 처량한 감상으로 누에고치처럼 웅크린 채 불꺼진 방에 종일 누워 있고 싶었고, 굳은 것을 껴안고 밤새고록 울고 싶었고,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고 싶었고, 그에게서 받은 편지와 사진을 태우고 싶었고, 그리고 나의 유일한 사치, 수만 가지 원두커피를 사고 싶었다. 더 이상 도시 외곽길을 막히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나는 마당에 나와 낙엽을 주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내 방으로 가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