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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품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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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6년 11월 177호
국회 내무위의 서울경찰청 감사장에 때아닌 성희롱 논쟁이 일었다. 악몽처럼 며칠 동안 온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한 연세대 한총련사건에 참가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이 문제된 것이었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추미애 의원이 여학생들이 연행되고 수사 받는 과정에서 온갖 추행과 입에 담기 어려운 희롱을 전경들이 가한 사실을 폭로 하였다.
추의원이 전한 여학생들의 증언 가운데 조금만 입에 담아 보자.
\"계속 쉬지 않고 전경들이 욕을 했고 \'너희는 북한에 가서 김정일 기쁨조나 해라 이년들아!\' , 그리고 어떤 형사분은 \'이형사, 오늘밤 수청들게 한 명 골라보지\'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외모가 남자 같아서 사수대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고 백골단은 저를 쿡쿡 찌르면서 \'언니 남자야 여자야. 언니두 사수대랑 잤어\' 하면서 모욕을 주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필자가 조금은 첨삭 가감한 것이다. 그대로 옮기기는 낯부끄러운 표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폭로와 질의가 계속되면서 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여학생들의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에 앞서 추 의원의 표현을 문제 삼으며 \"국회의원의 품위\"를 말하며 하나 둘 국정감사장을 떠나 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여성단체 연합이 늑달같이 성명을 냈다. \"사실 관계를 밝히려는 발언이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면 국회 국정감사는 부정비리를 밝히고 진실을 규명하기위위해서 적당히 각색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허위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국회의원의 \'기본\' 은 국정을 제대로 살피고 감사하는 일이다. 만일 추의원의 폭로와 그 여학생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경찰에 큰 문제가 있는 셈이 된다. 아무리 불법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라 해도 그렇게 험악하고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다. 사실 추의원이 학생들의 증언을 그대로 읽어내려 갔다면 \"그 내용 가운데에는 위에서 본 것처럼 낯부끄럽게 만드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낯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추미애 의원이 아니라 그런 짓을 한 경찰관들이었다. 민주주의 나라의 경찰이 그런 짓을 한 데에 대해 분노가 앞서야 했다. 그런데 그런 폭로의 진실을 확인해 볼 생각은 않고 그것을 폭로한 동료 의원의 표현을 문제삼아 품위를 운위하고 감시장을 비웠다는 신한국당 의원들의 태도야말로 국회의원의 \'기본\' 의 문제를 제기한다.
부처님이 한때 갠지스강가를 거닐면서 비구들에게 일렀다. \"비구들아, 이 갠지스강의 커다란 물거품 덩어리를 보라. 눈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보고 정관하여 있는 그대로 보라. 물거품에 어디 견실함이 있는가.\" 우리 사회는 있는 그대로의 최소한의 진실조차 서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물거품을 만들어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주장하려 든다. 그러니 대화가 될 리 없다. 고함이 난무하고 멱살을 잡힌다. 이러고서야 백성의 고통이 어찌 국회의 마당에서 제대로 논의되고 해결될 것인가. 선량들이여, 눈이 있다면 금방 스러지는 포말이 아니라 그 속의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