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사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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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본해
1996년 11월 177호
해인사가 앓고 있다. 독선적이고 파행적인 종무행정에 의하여 대중 전체가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총림의로서의 전통적인 가치와 역할이 몇몇의 승려에 의하여 부정되고, 무시되는 일에 있었다.
총림이란 선원, 율원, 강원이 모여서 서로 다른 논지 論智와 대중공의로서 수행하고 정진하는 곳이다. 해인총림이 종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것은 대중총의가 살아있고 올바르게 집행되는 원융 도량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소신에 반대하고 문중의 입장에 맞지 않다고 선원을 폐쇄하고 강원을 폐강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도 일찍이 교단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라 대중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소임자는 대중이 수행하는데 장애가 있는지를 살피고 제거하는데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중이 개인적인 욕망이나 문중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권한을 위임한 적은 없다. 총무원은 해인사 사태수습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총무원은한 달이 지나도록 종헌, 종법대로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종헌, 종법의 취지가 무엇인가. 대중공의의 실천이 아닌가. 선원폐쇄와 강원 폐강을 막기 위하여 총무원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몇몇의 스님네가 개혁종단의 공로자라는 이유로 자기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총무원 역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혁 종단 출범시 조계사에서 농성하던 수많은 대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이 바라던 종단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던가. 대중공의의 회복과 올바른 종단운영이었다.
개혁종단의 실체와 힘 역시도 대중공의였다. 해인사 대중의 요구도 그렇다. 대중공의가 살아있는 총림운영을 원하는 것이다. 해인총림의 아름다운 정통인 원융살림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적당한 후논리와 양비론을 경계해야 한다.
승가의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화합이다. 부처님께서도 언제나 화합 승가에 대한 많은 말씀을 남기셨다. 단지 종헌, 종법에 파화합승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없다라는 답변을 되풀이 한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특단의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 승가의 가장 큰 죄 중 하나인 파화합승에 대한 징계는 제쳐두고 정당한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려 한다면 자정 능력이 없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던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동안 종단이 내세운 수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종단의 위상은 퇴색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올바른 승가 정신의 실종이다. 전통적인 가치에 입각한 올바른 승가 정신의 회복만이 종단의 백년대계를 보장해줄 수 있다.
총무원은 대중이 수행할 수 있는 올바른 풍토 조성에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불교에서 해인사마저 원융살림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빛나는 승가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 이상 대중의 의사가 존중되고 실천되는 도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