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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개혁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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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서석재 1996년 11월 177호
삼십여 년을 정치에 몸담아 온 나는 불교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탈속脫俗의 가르침이라는 인식을 얼마전까지 가졌다. 산사를 찾는 것은 속세에 시달린 심신을 맑게 해 주는데 그 이상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가 삼십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올바른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에 대한 인식은 내게 닥쳐온 정치적 시련을 통해 차츰 바뀌어 갔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의원직을 내놓고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를 전전하면서 틈틈이 읽은 불교 서적은 새로운 불교 세계를 나에게 열어 주었다. 또 일요일마다 등산을 겸하여 사찰을 참배하면서 불교의 이상은 세속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부정적 현상을 바로잡는 실천수행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전을 보
면서 부처님이 세속의 부정적 현상에 대해 세속을 떠나야만 해결이 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음을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아함경」에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도둑질, 거짓말, 폭력, 증오, 잔인성등 온갖 범죄와 부도덕한 사회현상이 만연하였다고 씌여져 있다. 당시의 정치인들도 이러한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해결하고자 애를 썼으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오늘날과 같은 형벌을 통한 해결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형벌이 가혹하더라도 범죄는 줄지 않았다. 그것은지금도 마찬가지다.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가는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골머리를 앓던 정치인들이 부처님에게 해결 방법을 물었을 때 부처님의 대답은 \'모두 속세를 떠나 출가를 해야 한다\' 든가 \'욕심을 버리고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극히 세속적이었다. \"형벌을 통해서는 결코 부정과 비리를 근절할 수 없다. 범죄를 근절시키려면 국민의 경제적인 여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곧 곡식과 농사를 지을 설비는 농부와 경작자들에게 공급되어야 하고, 무역 업자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이 제공되어야 하며, 고용원이나 근로자에게는 적절한 임금이 지급되어야한다. 이렇게 충분한 소득을 벌어들일 기회가 부여되면, 국민들은 만족해 하고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게 되고, 그 나라는 평화롭고 범죄가 없게 된다.\"(장아함 구라단두경)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목표는 좀더 나은 경제 여건의 향상을 통해 국민 모두가 골고루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살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과소비를 하며, 과거 정권 때 행해졌던 부정과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부도 의식개혁을 통한 경제와 적극적인 성장을 국정 지표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이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결코 속세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부정적 현상을 바로잡아 존엄한 생명 모두가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지금 이 세대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부처님은 영원히 살수도 있었지만 제자들이 부처님께만 의지하고 제대로 수행을 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열반에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러한 부처님이 만일 다시 살아 오신다면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계신다면 과연 지금의 불자들을 보고 \'너희들은 나의 제자로서 훌륭한 수행을 하고 있다\' 고 기뻐하실지, 아니면 \'진정한 불자는 하나도 없다\'고 개탄 하실지 궁금하다. 내 생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하는데 뜻밖으로 많은 불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지금 개혁의 과정에 있다. 개혁을 주도하는 문민정부의 정치인으로서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자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에 반갑고 동지의식을 느껴진다.
불교의 개혁은 국가의 개혁과 마찬 가지로 특정 정파나 특정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교 역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불교 개혁의 시초는 인도에서 일어난 대승불교라고 알고 있다. 그 당시의 부파불교가 특정한 부파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소수 출가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것이 대승불교이고,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모든 중생의 성불을 구현하자는 개혁운동이 성공하여 대승불교를 역사의 중심으로 서게 하였다.
지금 우리의 불교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타종교, 또는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우리 불교도 그러한 이기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인으로서 너무 작은 모습이다. 불교인이 권력에 밀착하는 것도 비불교적이지만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무조건 정부가 하는 일이 불교를 경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불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불교의 개혁은 과연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금 나의 삶 속에서 얼마나 올바르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개혁은 잘못되고 왜곡된 것을 바로 펴는 것이지 남이 하는 만큼 나도 해야 된다는 이기적인 주장은 아니다.
한국불교는 천 육백여 년 동안 우리 민족 전통을 이어온 중심 사상이었지만 근세에 이르러 서구 사상에 밀려 소외되고 침체되어 왔다. 그러나보니 일부에서는 서구적이거나 현대적인 체제를 갖추는 것이나, 서구 종교의 외형적 성장을 답습하는 것만이 불교 개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국정에 임하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며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망설여서는 안된다 (不相違)\' 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되돌아보곤 한다. 경제인, 공무원, 전문 직업인, 학생 모두가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며 불교계의 개혁은 우리 사회인 모두가 이런 정신적, 도덕적, 지적 가치를 가질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의식 개혁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 그러면서도 물질적으로 만족되는 생활을 추구하는 사회, 더불어 궁극적인 진리인 열반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창조하는 불교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나는 오늘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